14년 6월 25일 남산예술센터에서 오태석 작, 연출의 <백마강 달밤에>
세상에 6.25 였구나. 입장 직전 매표소에서야 대화 중에 알았다.
일요일부터 오늘을 나는 그냥 이번주의 수요일로만 생각해왔었을 뿐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그 한 주 간이라는 요일의 괄호에 갇혀서 생각을 하니깐.
쩝. 그래도 6.25 날에는 형식적으로나마 아, 오늘이 육이오구나 라고 생각은 하며 살았었는데
오늘은...
그래서 아까 오늘의 날짜를 듣고선 뒷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 얼이 좀 빠졌었다.
게다가 작지만 그래도 내가 무대에 서 본 작품을 직접 본다는 것이 알 수 없는 얼빠짐 상태를
더했다.
6.25...
공연에서는 마을에 변고가 드는 장면에서 음향을 총소리, 포탄소리로 표현했다.
그 변고의 내용이 백제 멸망하는 부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내용 상으로 당연할 화살 시위 소리나 창칼 소리가 아니었다.
대본을 아는 나로서는 자연히 성벽 아래서 발굴된 유해에 대한 언급에 관심이 갔다.
그러나 오히려 발굴된 유해는 한국전쟁 희생자로 암시되지 않고 1400년 전 백제 병사들 유해
로 뚜렷이 명시를 하더라. 어라? 왜 그런거지? 트릭인가? 순간 얼탔다.
당연히 쉽게 한국전쟁 희생자로도 해석될 수 있게 아무 말 없이 넘어가거나 할 수 있었을 텐
데도 그러지 않고 백제 유해로 딱 못박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생각이 계속 이어져서 그런지 순단이 아니 금화가 성충을 혼낼 때의 첫 대사인
유교도 육이오로 들려버렸다.
이번에도 비발디의 사계는 선곡되었다.
그냥 생각만 할 때는 아니 왜 안어울리게 그 곡을 써?! 했는데
공연영상을 보고 또 이번에 공연을 직접 보면서는 너무 맘에 드는 선곡으로 느껴졌다.
내가 영화든 뭐든 클래식 곡을 까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세븐> 도서관 씬에서의 Air in G와 <인간중독>에서 왈츠 곡을 들을 때가 연상됐다.
왜 좋지 나는 극 속에서의 클래식이?
클래식을 많이 알지도 못하지만 여튼 난 극 속에서 노래를 쓴다면 클래식이 가장 좋다.
한산댁의 표현이 인상 깊었다. 연출을 잘 했다.
우리 애 죽는대 라는 슬픈 내용의 대사는 방긋방긋 웃으며
우리 애가 살아났어요 라는 기쁜 내용의 대사는 흐느끼며 외쳤다.
그냥 거꾸로 했을 뿐인데 와 페이소스가 더 확~ 느껴졌다.
괜히 외국말로 하는 거 질색하고 이왕 같은 뜻이라면 되도록 우리말로 말하려고 의식하는
내가 요새 부쩍 많이 쓰는 외국말이 있는데 그게 페이소스다.
입 밖으로 말하는 내내 그리스 비극의 웅장한 이미지가 아닌 동네 레스토랑 탁자 위에
놓여있는 뚜껑이 덕지덕지 더러운 핫소스통을 생각하지만.
처음으로 내 입이 대사를 아는 연극을 보았다.
아는 소절이 나오자 그동안 근질거리던 입술이 멋대로 벙끗거리기 시작했다.
놀라면서도 내심 즐기게됐다.
아아... 내가 지난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무심코 혼잣말처럼 내뱉고 나도 놀란
바로 그 대사!
내 반가워서 품에 품어도 보고 볼도 대보고 그래야하는데
아아..
왜 저 멀리 무대 위 배우가 대사를 하는데 내 가슴이 벅차오르지? 숨이 가빠오지?
세상에! 무대 위 배우의 호흡과 객석 깊숙이 있던 내 호흡이 동기화 된 느낌이었다.
배우가 호흡하는 리듬처럼 나도 호흡을 했다.
올해 나의 가장 큰 변화는 무대에, 스크린에 몰입을 깊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엔 항상 한 발짝 물러나서 팔짱 끼고 보는 느낌이었는데.
극을 보거나 할 때 다른 사람만큼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늘 나의 불만이자 불안함
이었는데 요새는 그래도 좀 안심하게 되었다.
드는 생각인데, 나는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 하다. 꼭꼭 씹나?
바로 바로 감상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잘 못하고 며칠 정도 지나서 물어보아야
술술 편히 말할 수 있다.
음... 내가 아는 어떤 대사를 인용하자면,
'표현을 안할 뿐이야. 다 생각하고 있어!'
난 그 직후에는 잘 얘기하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맘 속에서 정리가 되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래 써서 반들반들 해진 목가구처럼 진짜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아 맞아. 그리고 공연장 들어설 때부터 의자왕이 저 대사를 할 때까지의 내 기분은
딱 이거였다.
<빌리 엘리엇>에서 늙은 아버지가 빌리의 발레 공연을 보러가는 그 시퀀스!
공연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도 얼이 나가있고 빌리가 나올 때까지의 그 초조함과 설렘.
그 기분을 알았다. 나는.
그러고보니 그 장면 백조의 호수 클래식 곡 역시 좋잖아!
근데 내가 빌리 엘리엇을 보고 학습한 감정을 그대로 흉내내는건지 정말 그렇게 나도
느낀건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영화를 통해 먼저 어렴풋이 아 저런 감정이 있을 수 있겠다 이해만 했던게
이번에 내 가슴에 쿵~ 와서 부딪히고 박히면서 몸으로 체감이 된 거라면 좋겠다.
올해는 나에게 있어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수업 받는 느낌이다.
여태까지 앞에서 몰입이 넘 잘됐다고 해놓고 바로 이런 말 하기 민망하긴 하지만.
몰입이 되기도 했지만 안되기도 했다.
근데 이건 내 문제였다.
숨이 가쁜 이유가 절정으로 치닫는 극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끝이 두려웠던 건, 이 극적 환상이 끝나고 나면 극장 밖에서
나는 또 내가 미워하는 답답한 나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 때문?
아 나는 극장 밖에서 연기한다. 엉뚱하게. 그것도 제대로도 못한다.
지난 달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했었는데 그것도 영 마뜩찮았...
여튼 공연이 끝났는데도 나의 연기는 끝나지 않아 답답한가부다.
근데 뭐 몰입이 된 것도 내가 연기를 해본 의자왕에 대한 공감 때문이긴 하니까... 에라이.
어두운 의자들 뒤에 숨어 80분간 무대 위 울고 웃는 얼굴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 엉뚱한 남의 얼굴들만 바라보고 있구나.
지금 남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진정 내가 봐야할 얼굴은 어디인가.
하고 혼자 답답했다.
객석과 무대 위 배우들이 다 뒤섞여 한 데 모여 한 편
무릎에 턱을 괴고 빤히 무대와 객석 사이 허공을 바라보던 내가 한 편이었다.
아이구. 이건 사실이 아니라 상상이다.
뭔 나는 감상 적다가도 상상에 빠져 픽션을 적고 있어..
자야지.